자연은 나의 그린내/지리산

지리산국립공원 뱀사골 탐방안내소 소개

사랑하는 사람 2009. 8. 31. 08:04
오늘은 제가 좋아하는 지리산, 지리산 국립공원북부사무소에 있는 뱀사골 탐방안내소를 소개하겠습니다. 구경 많이 하시고 지리산에 오시거든 꼭 한번 들려주세요.~~
요새 천연비누도 열심히 만들고 있는데 천연비누도 드릴수 있어요.^^
자 그럼 지금 부터 저를 따라 오세요.~~^^

*** 뱀사골 탐방안내소의 전경입니다.
탐방안내소는 2001년 7월에 전적기념관 자리에 다시 건물을 지어서 2007년 5월 31일에 본격적으로 개방되었습니다. 1층은 지리산의 경관, 문화, 생태, 탐방 등의 전시가 되어 있습니다. 2층은 근대사의 아픔을 아! 지리산이여...라는 제목으로 사실적으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자~~그럼 먼저 저와 함께 1층을 보시겠습니다.

안으로 들어오시면 이런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맨 앞엔 지리산을 25000:1로 축소시켜 놓은 모형도가 있습니다. 잠깐 보고 갈까요.

지리산국립공원 모형도입니다.
여러가지 색깔로 표현을 해두었는데요.
노란색선은 지리산경계구역을 표시한 것이고, 빨간색은 탐방로입니다. 그 밖에 파란색, 하얀색으로도 표시를 해두었는데요 직접 와서 한번 보세요.~~^^
지리산 둘레가 모두 320km, 800리 입니다. 서울에서 지리산까지 300km인데 이 보다 더 긴거리입니다.
굉장하죠?

다음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일단 국립공원에 오셨으니 국립공원에 대해서 알아가야겠죠?
국립공원이란 한나라의 대표적인 자연 생태계와 역사, 문화 자원이 잘 보존된 곳을 말하며, 학술. 생태적으로 가치가 매우 크며 삶의 질을 높여 주는 휴식처이자 미래세대를 위해 남겨 놓은 소중한 우리의 유산입니다.
 그렇다면 세계에서 가장 먼저 지정된 국립공원은 어디일까요?
네..^^ 미국에 우치하고 있는 엘로스톤국립공원이라고 해요. 실제로 이곳에 돌색깔이 노랗다고 해요. 즉 이지역은 오래 전에 화산활동이 일어났던 곳으로 돌 표면에는 뜨거운 곳에서도 살 수 있는 호열성박테리아가 살고 있어서 돌 색깔이 노란색, 빨간색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이곳은 지리산 북부의 생태와 문화에 대하여 보실 수 있는 곳입니다.
왼쪽의 대형 사진은 지리산 북부사무소 관할 지역인 바래봉에서 만복대의 서부능선과 반양봉, 토끼봉까지의 전경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오른쪽은 저희 사무소에서 운영하는 4개의 탐방프로그램과 불교문화유산, 인근지역문화 그리고 지리산과 함께 하는 흥겨운 잔치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

여기는 5월의 뱀사골 계곡과 숲의 형상을 재현한 디오라마입니다.
그리고 여기 7개의 서책 식 패널을 만들어 뱀사골에서 서식하는 동식물, 버섯 10종을 선정하여 여러분들이 탐방하실 때 익숙하게 관찰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자연의 느낌을 가질수 있도록 열 센서 감지기로 새소리가 나오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자..계속 서있으니깐 다리가 아푸시죠?
그럼 잠깐 앉아 볼까요?~~ 여기안으로 들어오시면 반달이가 나와 여러분에게 지리산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약 7분에 걸쳐 알려줍니다.
잠깐 앉아서 지리산의 형성과정에 대해서 다함께 보겠습니다.

다시 이동을 하겠습니다.
이곳은 인간, 자연재해등에 의해서 훼손받는 지리산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우리모두 자연의 고마움을 깊이 세겨 소중하게 지켜나갑시다. 

1층의 마지막 코너 지리산의 옛모습입니다.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지리산은 지혜로운 이인이 많이 있는 산이라는 뜻입니다. 지리산은 여러 가지 이름이 있는데요, 두류산, 적구산, 방장산등..요. 이런 지리산, 천왕봉, 반야봉등은  김정호님의 대동여지도에도 표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아주 오래 전부터 사용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리산에는 대표적인 주요사찰로 실상사, 대원사, 화엄사, 쌍계사가 있습니다.
이 사찰들은 우리나라에 대표적인 사찰들이기도 하죠~ 시간 나시면 꼭 한번 가보세요.^^

그럼 1층 해설은 마무리 하고 2층으로 올라갈까요?
.
2층 안내소 가기전에 빨치산 전쟁의 아픔을 담은 사진들.

2층은 '아~~! 지리산이여'라는 이름으로 지리산에서 있었던 현대사를 되돌아보고, 새롭게 조명해보는 공간으로 만들어져있습니다. 그동안 많은 분들이 방문해주셨고, 특히 우리 현대사와 지리산의 역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지고 돌아가셨습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지리산국립공원의 역사를 알아가는 좋은 기회가 되시길 바랍니다.지금부터 토벌대와 빨치산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아래를 보면 당시 지리산 뱀사골 지역에서 빨치산과 토벌대가 전투를 벌이던 격전의 현장을 가상으로 연출한 곳입니다. 당시 실제 사용하던 총기와 무전기, 포탄을 전시하였습니다. 이름표 오른쪽 상단의 빨간색 표시가 있는 것은 빨치산이 사용했던 무기이고 파란색 표시는 토벌대가 사용했던 무기입니다.
당시 상황을 상상해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쪽으로 이동하여 벽면을 보시겠습니다. 여기는 해방 후부터 1963년 마지막 빨치산 정순덕씨가 잡히기까지 시간 순으로 주요 역사들을 정리해 보여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8,15 해방을 맞은 후 정치적인 갈등과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사회적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민중들은 새로운 국가 건설에 대한 희망이 있었지만 친일파와 민족반역자들이 청산되지 않고 다시 활동하기 시작했고, 미국과 소련의 통치에 의해 남과 북은 분단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또 생필품은 바닥나고 곡가가 치솟는 등 사회적 불안이 가중되면서 분노는 극에 달합니다. 마침내, 46년 9월 대구 철도노조의 반미 군정 파업을 시자으로 대구 전역은 물론 삽시간에 서울을 비록한 남한전역에 대모시위가 벌어집니다. 군정경찰이 이 시위의 주모자들을 체포하고 수배하는 과정에서 좌익 공조자들은 태백산과 소백산 주변 산악에 숨어드러 야산대 활등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들이 후에 빨치산 활동을 하게 되면서 빨치산의 시초가 됩니다. 그 후 제주에서는 좌,우익 갈등으로 큰 소요에 빠지면서 제주 4,3사건이 일어났는데 이 제주4,3사건 진압 명령을 받은 여수 제 14연대가 경찰타도와 남북통일의 구호아래 출동을 거부하면서 반란을 일으킵니다. 이것이 잘 아시는 여순반란 사건입니다.
14연대는 여수, 순천, 광양, 벌교, 구례까지 장악하지만 토벌대의 소탕작전으로 반란군 패잔병 1000여명은 광양 백운산과 지리산 화엄사골, 웅석봉 등으로 숨어 들어가는데 이들이 바로 '김지회, 홍순석 부대'입니다.  김지회, 홍순석이 이곳 반선마을에서 죽고, 남은 반란군들은 야산대 활동을 했던 이들과 합류하면서 정규군의 형식을 갖춘 본격적인 빨치산 활동을 하게 됩니다.
 그 후 6,25전쟁이 터지고 9,28 서울 수복이 되면서 퇴로를 차단당한 북한국은 그 간 활동했던 빨치산 부대에 합류하여 게릴라 유격활동을 하게 됩니다. 그 과정 속에서 많이 들어보셨던 남부군이 결성되어 세력을 넓혀 갑니다.
 이제 토벌대의 활동을 보시겠습니다. 토벌대는 군경합동작전으로 토벌을 실시하는데 초기 토벌작전을 했던 11사단의 경우 견벽청야라는 무리한 작전으로 거창양민학살과 같은 무고한 희생을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그 후 51년 11월 백야전 전투사령부가 남원에 설치되면서 대대적인 동계토벌작전을 실시합니다. 1단계, 2단계, 3단계에 걸쳐 작전을 실시하며 지리산을 완전 포위해 빨치산을 공격하게 됩니다.
 1953년 9월 17일 이현상이 사실되고 각 지도자들이 죽게 되면서 사실상 빨치산은 활동은 막을 내리고 1955년 5월 23일 빨치산 소탕을 공식발표하게 됩니다. 이후 1963년 11월 12일 마지막 빨치산이던 이홍이씨가 사살되고 정순덕씨가 생포되면서 지리산 빨치산의 역사는 끝을 맺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역사적으로 큰 획을 긋는 굵직한 사건들과 그에 띠른 많은 희생이 있었던 격변의 시기였습니다.

설명이 좀 길었습니다만 그 시대 상황을 개략적으로나마 아셔야 이후 전신관을 보시는데이해가 쉬울것 같아 약간 길게 설명 드렸습니다.

전시된 무기는 앞서 보셨던 것처럼 당시 토벌대와 빨치산이 사용했던 무기입니다.  미국제와 소련제이고 최신무기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빨치산 활동모형입니다.  이 모형도는 1948년부터 마지막 빨치산 정순덕씨가 생포된1973년까지 빨치산과 토벌대의 작전상황, 빨치산의 이동루트, 역사적인 주요지점 등을 지리산 모형을 통해 보여드리고 있습니다. 빨간색으로 표시된 선은 빨치산의 이동루트입니다.
 당시 지리산엔 삼도봉을 기점으로 전북, 전남, 경남 세 개의 도당이 지역적인 분할 선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각 도당은 그 지역 출신 빨치산들로 구성이 되어 지형 지리에 능통해서 보급투쟁 및 유격활동에 능했습니다. 여기 보이는 남부군은 지역적인 선을 넘어 자유롭게 지리산 일대에서 각 도당의 지원을 받아 빨치산의 정규군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승리사단, 인민연단, 혁명지대 등의 사단을 거느리며 각 도당의 협조하에 유격투쟁을 벌여 남으로는 백운산, 북으로는 덕유산까지 활동영력을 넓혀갔습니다.  특히, 남부군은 막강한 화력과 병력을 자랑하며 게릴라 전술보다는 전면전의 양상을 띠는 전투를 벌였습니다. 곡성과 구례의 전투에서는 대낮에 시가전을 벌이며 대담하게 경찰과 관공서를 급습하기도 했습니다.
 바깥쪽에 보이는 파란 화살표는 백야전 전투사령부의 동계 토벌작전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지리산을 완전 포위하고 이 곳 주능선으로 압박해 들어가는 작전이었습니다.
 겨울에 본격적인 빨치산 소탕작전을 시행함에 따라 빨치산과 군경의 일대 전면전을 방불케 하는 전투가 곳곳에서 발생하고 이로 인해 지리산일대에 거주하는 남부군과 각 도당들은 세력이 급격히 약화되어 더 이상 활동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타격을 입게 됩니다. 휴전 이후 빗점골에서 이현상이 사살되어 각 지도자들이 차례로 사실되면서 빨치산은 급격히 와해됩니다. 결국 1963년 이곳에서 마지막 빨치산 정순덕씨가 생포되면서 빨치산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됩니다.

이곳은 당시 빨치산으로 토벌대로 활약하셨던 분들의 인터뷰를 담았습니다.
한 10분정도 걸리지만 생생한 증언인 만큼 들어보십시요.

다 보셨으면 이쪽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여기있는 생활도구들은 빨치산들이 사용했던 도구입니다. 그들이 있었던 비트에서 나온 것입니다.
왼쪽의 방한복은 빨치산중에서도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나 입었던 것이고 그 밖에 빨치산들은 한 겨울에도 얇은 옷을 입어야 했고 그 것 조차 입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산에서 세번죽는 다고 했는데요,.  바로 추어서 죽고, 배고파 죽고, 총맞아 죽었다고 합니다. 당시의 처참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중앙에 보시면 지금의 캐논 카메라도 있었고 사이다도 있었습니다. 
 무엇이 빨치산들에게 이렇게 고난의 삶을 기꺼이 선택하게 했을까요? 지금도 빨치산에 대한 연구와 평가 작업은 이루어지지 않고 그저 현대사의 아픔으로만 남아있는 현실입니다. 이제는 제대로 된 연구와 평가작업이 진행될 수 있도록 여기 계신 분들을 포함해 많은 분들의 뜻이 모아져야겠습니다.

이쪽을 보시게요.
뱀사골 탐방안내소에서 20분쯤 걸어가면 석실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빨치산의 인쇄소였습니다. 이곳에서 책도 찍어내고 사상 교육도 시켰다고 합니다.

이것은 귀향증인데요.
토벌때가 삐라로 뿌린것입니다. 귀향증이란 이 증을 가지고 빨치산의 삶을 버리고 자수하여 토벌대로 돌아오면 받아준다는 내용입니다. 실제로 귀향증을 가지고 자수하면 살려주었고 빨치산을 토벌하는데 활용하였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보신 것 처럼 참으로 가슴 아픈 역사가 지리산에 있습니다.
이런 역사를 잊으면 그 역사는 다시 반복된다고 합니다. 집에 돌아가셔서 아름다운 지리산과 함께 지리산의 역사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리산국립공원북부사무소 직원들이 자연과 탐방객들을 생각하며 만들어 가는 비누입니다.